내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나한테 영어는 어떤 존재냐고. 영어에 왜 그렇게 목숨거냐고.

나도 묻는다. 당신은 영어공부 왜 하냐고. 대부분 대답한다.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위해서. 너도나도 해외연수는 다 다녀오니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목적의식없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난 영어 재미있어서 공부한다. 재미있으니까!!!

실은 처음부터 영어가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어는 내게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여전히 넘어야할 산이지만, 이젠 그 힘든 산을 오르는 과정이 나는 너무도 즐겁다. *^^* 

 

Soo의 영어의 쓰디 쓴 이야기들

  

하나리퍼블릭에 전화 한통이 왔다. 하나리퍼블릭에 상담을 원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회화공부가 처음이거나 / 영어공부는 했지만 말은 여전히 안떨어지는 영어울렁증 학생이라 생각했다. 영어회화의 효과적인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영어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많은 나이기에 하나리퍼블릭 외의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방문상담까지 무려... 1시간을 영어울렁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셨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정말 다 잘 할 수 있는데. 영어때문에 늘 장벽이 생긴다고. 영어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울렁 거린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급하고 불안한 목소리에서 영어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다.

 

나 역시 꾸준히 영어는 계속 해야하는 거고, 앞으로 영어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내 모습이 생각났다. 영어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조차 없던 그 때....

 

이 블로그도 어느샌가 영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난 영어에 대한 집념? 아니 집착이 굉장하다.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지만... 유독 영어 앞에서만 작아졌던 내 모습. 영어때문에 겪어야했던 쓰라린 경험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땐 그랬지' 하며 웃어 넘기는 일이 된다지만. 나는 여전히.. 소위 영어에 데인 일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울컥한다.

 

내 영어 욕심이 시작 된 곳, Nepal 

 

영어로 인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쓰디쓴 경험은 Nepal 에서 시작된다. 공정무역 캠페이너로 활동하던 당시. 거의 사무실에서 지낼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커피 대표로, 커피생산지인 네팔을 방문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주변은 모두 축하해주었지만, 난 기뻐할 수 없었다..... 기대를 져버릴 것 같은 압박감이 너무도 컸다. 난 영어로 말할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네팔에서 해야할 일은 커피 생산과정과 농가들을 사진으로 담고, 생산자들과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나 그 역할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영어 한 마디 못 해보고, 남들 웃을 때 왜 웃는지 멍- 해있고. 한 테이블에 앉아있으면서도 그들과 200m 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네팔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오늘은 어떤 곳을 방문하게 될까?' 라는 설레임보다는 나를 믿어주고, 전적으로 지원을 해줬던 아름다운커피 간사님들에게 너무도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네팔에 머무는동안 내 역할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침대에 누워 밤마다 울던 기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떠오르는 기억이기도 하다.

 

 네팔에서 만난 프라바 (pravha)와 루팔 (rupal), 열악한 환경에서도 밝은 두 친구. 훨씬 나은 환경을 누리고 사는 나는.

무엇이 부족하다며 나는 너무 바빠 영어공부를 할 여건이 안된다며 투정을 부렸던 걸까.

 

내가 영어에 대한 집념을 보이게 된 건, 네팔에서 프라바 (pravha)와 루팔 (rupal) 를 만나면서 였던 것 같다. 네팔은 영국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 소수 상위층은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난 벙어리로 앉아 사진만 찍고, 함께 네팔행을 올랐던 구선모오빠와 신충섭국장님께서 인터뷰를 하셨다. - 이때 이미 난 역할을 못해냈다는 죄책감으로 기가 죽어있었다. -

 

나중에서야 국장님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프라바와 루팔은 지역사회를 위해 힘쓰고 싶다고 한다. 영어를 열심히 배워, 네팔의 커피가 국제적으로 수출될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그래서 커피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인터넷도 할 수 없고 학교도 멀리 떨어진 이 열악한 곳에서 자신 있게 영어를 구사하고 늘 밝은 두 친구를 보면서.... 그들이 가지지 못한 환경을 모두 가진 나는 왜 어떤 도전도 하지 않는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다며 늘 투덜대는지. 또 한 번 내가 가진 환경들에 대해 감사하자고 다짐했다. 한편으로는 나는 왜 늘 나보다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을 볼 때 그제서야 감사함을 느낄까. 왜 나는 그 정도 밖에 안 될까. 만감이 교차했던 하루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너무도 많은데, 네팔에서 느끼는 점이 너무도 많은데 단지 영어가 되지 못해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에 짐이 됐었던 것 같다.

 

'영어'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은 날

 

 

그렇게 아쉬운 네팔행을 마치고. 나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네팔에서 날아온 공정무역 러브레터' 라는 주제로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발표 울렁증으로 염소소리를 내던 나... 떨리고 자신없는 내 모습에, 염소소리를 내는 내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강연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프라바 (pravha)와 루팔 (rupal) 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난 강연 도중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두 친구를 보면서... 무엇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훨씬 나은 생활을 누리면서도 영어하나 못해 그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 하는게 너무 바보같다고. 똑똑하게 강연을 마치고 싶었지만.... 터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학교 무료 영어토론 수업에서도 벙어리 채 앉아있던 날도...

지하철 노선을 묻는 외국인에게 sorry sorry 하며 쓴 웃음을 지었던 날도...

교수님추천으로 국가 장학금을 받으러 가서 영어 인터뷰 첫 질문에 대답도 못해보고. 남산을 엉엉 울면서 내려왔던 날도...

내겐 영어란 그런 존재였다.

나를 참 작게 만드는 존재.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들고. 나를 믿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함보다는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오랜 영어 짝사랑의 마침표. 영어와 연애하게 되다 \(^▽^)/

 

 

영어와 관련된 내 쓰라린 경험들은 나를 학교 울타리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영어 그만 짝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떠난 타지생활. 그동안 목적없이 모아왔던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자비를 넉넉히 벌어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캐나다생활은 정말 가난했다. 몸은 상할 때로 상해 지금도 허리아픔으로 고생을 하는데. 당시엔 영어 외엔 내 건강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영어를 정말 열심히 사랑했다. 어떻게 밑바닥부터 공부했더라... 그 방법이 뚜렷하진 않지만. 어느 시점에 이제야 영어랑 연애하는 것 같다.... 라고 느낀 순간이 분명 있었다. 

 

결심 : 한국식 스트레스 영어공부에 한 획을 그어보리라 

 

그리고 영어로 대화하는게 일상이 되었을 즈음. 나는 결심을 하게된다. 나. 한국 돌아가면, 꼭. 기필코. 나같이 영어에 작아지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수능공부, 토익공부 스트레스 받아가며 공부하는 영어가 아닌, 즐겁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국 영어흐름에 한 획을 긋겠다고. 절대 나 혼자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겠다고. 무언가를 하겠다고...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 안에서 하나리퍼블릭을 만났다. 15시간 비행후 23시간 공항노숙 다시 5시간 비행. 한국 오는 날까지도 힘든여정을 밟아야만 했지만 인터넷으로 하나리퍼블릭의 정보를 찾아보느랴 밤을 꼴딱 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단지 하나리퍼블릭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내 경험에 의해.. 영어회화공부는 이렇게 해아한다. 하나리퍼블릭이 정말 제대로된 영어회화방법이다. 라고 말하고싶은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난 정말이지. 나 역시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울기만 했던 그 때가 여전히 생생해서.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최대한 이야기해주고 싶은건데 그게 오해가 되진 않을지 오만가지 걱정을 하는 나이다.

 

다시 2011년 2월 어느 날....

 

예전의 기억들은 적어도 적어도 끝이없다. Anyway,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2월 중 하나리퍼블릭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와 영어에 대한 불안감과 잘하고 싶은 욕심을 보이는 그 분을 상담하면서, 마음이 찡했던 건. 내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을 너무도 난 잘 이해한다. 남들은 설마.. 하겠지만, 정말 영어 하나때문에 모든 일에서 자신감이 없어지는 그 느낌. 

예전의 내 모습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고. 그 날 늦은시각 버스에 올라 멍- 하니 지나가는 가로등만 바라봤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는지, 심신이 지쳐 집에 돌아왔는데... 예전에 난 어떻게 극복했지... 하고 방을 뒤적였다.

그 날 방에서 찾은 내 영어에 대한 집념의 흔적들.....

 

 

 

원서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읽고 키워드를 기억해두었다가 paraphrasing 해서 포스트잇에 나만의 문장으로 다시 적었던 흔적.

 

캐나다에서 미친듯이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고. 심지어 Korea town 에는 절대 가지 않고. 영어환경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식조차 먹지 않았던 나. 3개월은 김치는 물론, 한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님. 단지 내가 유별나게 굴었던 것 뿐. 캐나다에서 한식 잘 만먹어도 영어와는 별개임 ^^:)

 

학교 발표도 밤새 준비해 영어 한 문장 더 말해보고, 더 표현하고. 한번 더 feedback 받아보겠다고 지하철에서 새우잠을 자던 나였다. 위 사진은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읽고 키워드를 기억해두었다가 paraphrasing 해서 포스트잇에 나만의 요약문을 적어본 흔적.

 

: 여전히 영어 영어 영어. 영어 생각 밖에 없지만... 내 영어에 대한 집념에 새삼놀랐다. 정말 한이 맺혔나보다.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첨삭받은 에세이를 발견. 발음기호대로만 어설프게 읽었던 나. 's' 는 다 빼먹고, 동사와 형용사도 구분 못했던 내가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강의실 벽면에 good example 로 내 에세이가 붙여지기도.... :)

 

하나리퍼블릭은 모든 선생님들이 몸으로 's' 를 표현하며 's'를 붙이라 설명한다. 나 역시 's' 라인 살려주세요! 's' 를 사랑해 주세요! 라고 외치는데... 캐나다 선생님께 첨삭받은 에세이를 보며.... 's'를 다 빼먹던 그 때가 있었지.... 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쓰-' 라고 하얀이를 보여주던 Teacher. Craig.... 칠판에는 LOVE 'S' 라 적어놓았던 Craig. 모든게 그립고 벅찼다. 나 그래두 참 열심히 했구나... 싶어 눈물이 또 났다. 스스로 감동이 아닌, 그때 그 고생했던 시절이 생각나서다. 보통 사람들은 외국, 캐나다하면 여유롭고 돈 많은 사람들만 이민가고. 유학가는 거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나는 2달러 식빵 묶음이 아까워 한 쪽을 반으로 접어 먹으며 살았다. 

 

유학길을 혼자 힘으로 다하겠다고 확언을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돈은 보태어 줄 수 있으니 돈 모자르면 얘기하고 건강 챙겨, 여행도 많이 많이 다녀오고." 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힘들때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말 해주길 내심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힘들어도 혼자 힘으로 하겠다고. 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돈 아끼고 건강은 나빠지더라도. 이렇게 힘들게 왔으니, 다 놓고 왔으니 영어는 꼭 정복하자고.

몸이 아픈건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영어가 마구마구 뿜어져나오다 stop! 하는 날은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잘 살아보려고 내가 여기 왔나? 내 사람들, 편안한 집. 가족들. 다 놓아두고." 그리곤 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도 살아보자. 살아내자. "

"영어로 인한 자존감 상실. 이젠 지친다. 회복하고야 만다."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영어에 대한 짝사랑은 never ending 이었고,

4.0 만점에 3.7 point 를 받아 july session 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다. :)

밑바닥 Soo도 하는데 당신들이 왜 못해! 그게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영어 너에겐 어떤 존재냐. 너는 왜 영어에 그렇게 목숨거냐. 영어는 다들 잘 하는데, 다른 걸 준비해야하지 않겠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한다.  

그러나 내게 영어는 취업을 위한 스펙 중 하나라든가. 글로벌함을 과시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 시절의 나는 목적없이 치열한 삶이였다. 나에 대한 칭찬은 거북스럽고, 내 자신을 한없이 깎아 내리는 건 오히려 편안했다. 

내가 얼마나 속 빈 강정인지 나만 알고 있어야지. 하다가.. 영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심지어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때문에 자기애가 없는 내 어두운 면들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는 것 같고.... 기회를 주는 분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 같고. 더 이상 작은 내 모습.. 들키기 싫어서 자기방어만 해왔다.

 

좋아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이 그냥 열심히하다가... 그러다 지치면 한없이 좌절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몸 속 에너지가 방전될 때마다 어떻게 충전하는지, 그들을 움직이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난 이제 알겠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나에겐 그것이 영어이다. 나 이젠 한 순간도 목적없이 살지 않는다. 

내 이 영어에 대한 마음이, 열정이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영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르쳐 줄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으면.... 

 

그리고 난 꼭!  이 내 파란만장한 영어 이야기를 가지고 스물아홉에 무릎팍도사를 나간다! :-p

Posted by 이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