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다녀온 이후, 네팔 방문기를 소재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 진행자가 아닌, 강연자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늘 떨리는 일이지만. 네팔에 다녀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 매번 가슴 벅차다. 네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어느새 나는 답답한 서울이 아닌 바람이 솔솔 부는 피딤 언덕에 앉아있다. 다음 목적지를 떠올리며 들뜬 기분으로 지도를 들여다보는 즐거운 상상.


네팔의 분주한 아침. 엄마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가게 문을 열고 앞 마당을 정리 정돈하는 상인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들이다. 네팔에 온 지 이틀이 지나고나니 모든 것이 익숙해진다. 아름다운커피 간사님들과 아름다운 커피특공대 역시 아침부터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니.... 한국에서 생산자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련한 학용품을 한 세트로 나누는 작업을 했다.


▲ 아름다운커피와 거래하고 있는 조합의 생산자 자녀에게 선물할 학용품들. 오랜만에 색색이 학용품들을 보니 마음이 설렌다. 어릴 적 친구가 준 선물을 다락방속에서 우연히 본 기분이랄까? - 아침에 굴미DCF 조합과 KTE 사무실에 들러 아이들 학용품을 전해드리고 왔다.  네팔 아이들이 좋아해야 할 텐데… 선물의 반은 고민에 있다. ^ ^


▲ 피딤으로 가는 경비행기 안. 타자마자 왼쪽 창가를 사수해야한다. 히말라야 산을 볼 수 있는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홍차 생산지 피딤(Phidim) 으로 가는 날이다. 피딤은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50분 비행 후, 6-7시간을 차로 이동해야하는 오지이다. 포장되지 않은 길과 시시때때로 내리는 소나기로 차 안의 여정이 힘들었지만, 오랜 시간을 이동하면서 아름다운커피 간사님들과 KTE 실무관리자인 딜리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6개월 간 한국에서 아름다운 커피특공대로서 공정무역 세미나를 두 번 기획해보았지만, 공정무역에 대해서 막연하고 단순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들의 삶이 바뀐다거나, 경제적 상황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소비자 기준이고 우리의 기준에서 판단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네팔에 와서 상품의 유통과정, 한국에서 실천할 수 있는 캠페인, 아름다운 커피특공대 1기에 대한 조언 등... 간사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나는 어느새 공정무역에 한걸음 나아가 있었다.


▲ 네팔 남동부에 위치한 일림(Ilim)에 도착한 아름다운 커피특공대 구선모 대원과 나. 우측사진은 차 안의 지루함을 날려주신 아름다운커피 김무성 간사님의 모습이다.


피딤으로 가는 도중, 한 후추농가를 방문했다. 아름다운커피는 공정무역 상품을 계속해서 개발 중인데, 후추도 그 중 하나이다.
신충섭 간사님께 ‘수많은 상품 중 공정무역 상품으로 선택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이에 간사님께서는, 소비되어야하기 때문에 생산규모, 조합의 의지도 물론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품목을 거래하려한다’고 하셨다. 이왕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영역을 건드려서, 국내 생산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커피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작은 농가에서 본 후추 열매와 후추나무

피딤에 도착한 시각은 8시! 스콜 현상 때문에 중간 중간 비를 맞기도했고, 안개가 끼어 잠시 쉬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에 도착한 피딤은 이미 컴컴한 밤이 되어있었다. 7-8시간을 운전하며 뒤에서 짐을 봐주었던 두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피딤의 KTE사무실 안. 아짜라 씨는 피딤 공장 매니저다. 그는 차의 맛에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진지하게 접근했다. 저녁식사때, 우리 한국 음식 '김'을 권했을 때도, 만져보고 조금 씹어보면서 신중히 맛을 감별했는데 첫 마디가 씹는 촉감이 '플라스틱' 같다고 했다.

피딤에서의 첫 저녁식사.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고추장이 그립다. 딜리씨가 준비한 달밧 (네팔어로 국,밥을 의미한다) 과 함께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꺼냈다.

▲ 채식주의자인 딜리씨를 위해 소고기가 들어갔는지 살펴보는 신충섭 간사님.


그리고 간사님 앞의 요상하게 생긴 은색 보온통 안에는 네팔 토속 술 ‘뚬바’가 들어있다.
이것은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 마시는 네팔식 막걸리이다. 물만 부으면 술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요술 술이다. 그 비밀은 안을 열어보면 알 수 있다. 각종 곡물 찌꺼기가 들어있었는데 곡물 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따뜻한 물에 한 번더 우려먹는 것 같았다. 필수적으로 맛봐야하는 빼먹을 수 없는 토속 술!

오늘 밤에도 간사님들의 좋은 말씀이 계속되었다. 공정무역에 대한 한국 인식, 언론들의 반응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한국 언론들은 선정적인 타이틀로 대중들의 관심을 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공정무역을 이용한 자극적인 기사의 대표적인 주제는 자유무역과의 비교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자유무역의 비도덕, 비윤리성과 공정무역의 윤리성을 고발하는 기사라든지. 자유무역의 탐욕과 공정무역의 원조사업 등의 기사 등이 있다. 한 주제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 기자나 컬럼리스트들도 공정무역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은채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가 마치 '유행'처럼 되어 얕은 지식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기사들은 공정무역에 대한 오해를 낳게 되는데, 생산자에 대한 윤리적 소비로 공정무역이 기적과 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등의 오해이다. 공정무역은 생산자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거래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거래를 추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또 반대로 자유무역 거래라고 모든 것이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공정무역과 자유무역은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공정무역 역시 소비 없는 생산이 일어나지 않고, 소비시장이 줄어들면 생산도 줄어드는 자유무역의 한 부분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생산자 측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소비 시장이 줄었다 하여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는 대신 계속해서 생산자와 협의하여 조절해나가는 지속적 파트너십에서 두 무역 방식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 비해 유럽쪽은 공정무역에 대한 활동이 굉장히 활발하다. 영국 공정무역 단체, 옥스팜의 경우 콜린퍼스 (영국 유명 연예인)가 자발적으로 공정무역 홍보대사를 맡고 있고 그는 공정무역 커피에 관해 스타벅스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또 아름다운 커피와 함께 공정무역에 관하여 행사를 진행한 대학들의 이야기도 들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커피특공대가 진행한 세미나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내가 속했던 팀이라 더 귀기울였던 것 같다. 우리 세미나는 너무 강의 중심이라는 문제점도 말씀해 주셨다. 세미나는 강의가 아니라 주제 토론 후 대안이나 결론까지 내야하는 교육방 법이다.그러나 커피 특공대의 세미나는 너무나 강의중심이었고,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았던 문제도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네팔에 와서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있다면, 한국에선 들을 기회가 많이 없었던 간사님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커피특공대로 활동하는 시간 외에 밤늦게까지 간사님들과 대화할 수 있음이 너무 행복했다. 만남과 인연은 연쇄적인 것... 서로의 존재가 존재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내가 간사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내 소중한 인연들에게 전하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란 것. 왠지. 좋다. 

 

이해수는...

사람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낭만을 품고 있는 여학생. 2009년 아름다운 커피특공대 1기로 6개월간 치열하게 공정무역 세미나 기획, 블로그 기자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활동 종료 후 우수대원으로 선발되어 8월의 무더위 속에서 11일간 아름다운커피와 아름다운홍차의 네팔 생산지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네팔에서 보고 들은 생산지 이야기와 그 안에서 느끼고 생각한 공정무역 이야기를 이제부터 이곳에 조근 조근 풀어 놓는다.



아름다운 커피특공대 공식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beautifulcoffee.tistory.com/57

Posted by 이해수